작성일 : 13-12-13 17:47
구원을 이루라 (빌립보서 2;12~16);성경공부
 글쓴이 : kEsther
조회 : 3,963  
*  안에서 이루어진 구원을 밖에서도 이룸(빌립보서 2:12-16).

☞ 미래에 구원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서 시선을 돌려
  바울은 다시 구원 받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초점을 맞춘다.

1) 두려움과 떨림으로(12절).
(1) 두려움과 떨림은 문자 그대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과 그러한 두려움에서 오는 떨림을 의미한다.
이것은 단순한 경외심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오금이 저리고
다리가 후들거리듯이 그러한 두려움과 전율과 떨림을 말하는 것이다.

(2) 그 한 예가 출애굽기에 제시되어 있다.
『모든 백성들이 천둥과 번개와 나팔 소리와 연기나는 산을 보았는데
 백성이 그것을 보고 이동하여 멀리 떨어져 서서 모세에게 말하기를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않게하여
 우리로 죽지 않게 하소서.” 하니.』(출 20:18,19)

하나님의 직접적인 음성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워 떨었다.
하나님의 직접적인 음성과 동일한 권위의 말씀이 지금 우리 손에도 들려 있다.
우리는 주의 말씀에 얼마나 두려움과 떨림으로 다가 서고 있는 것인가?

(3) 하나님께서는 영이 가난하고 통회하고
주의 말씀에 떠는 사람을 보살피시겠다고
이사야 66:2절에서 말씀하셨다.
주의 말씀에 두려움과 떨림으로 다가 서는 그리스도인만이
지혜와 지식을 얻을 수 있고(잠 1:7), 악에서 떠날 수 있는 것이다.

(4) 에스라 9장에서 남은 자들이 성별하지 못하고 이방인들과 혼인함으로써
 그 씨가 섞였을 때, 성별을 회복하고 다시 이스라엘이 소망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떠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에 떠는 모든 자가』(스 9:4).
이들이 에스라에게로 모여들었고, 함께 죄에 대해 통곡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을 거역하여 범죄하였고
그 땅의 백성에게서 타국 아내들을 취하였으나
오히려 이제 이스라엘에는 이 일에 대하여 소망이 있나이다.
그러므로 이제 내 주와 우리 하나님의 계명 앞에서 떠는 자들의 의견대로』(스 10:2,3).

(5) 하나님의 말씀 앞에 두려움과 떨림으로 다가 서는 사람들이 있는 한
 그 나라는 소망이 있다.
 이러한 두려움과 떨림은
 본문에서 언급한 복종의 근간을 이루는 요소이기도 하다.

『너희가 항상 복종했던 것처럼』(12절).


2) 두려움과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12절).!!!!!!!!!!!

(1) 이것은 행함으로 구원을 유지하라는 말이 아니다.
구원이란 말은 기본적으로 “건져냄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2) 첫째는 혼의 구원을 의미한다.
죄의 값인 사망으로부터, 지옥으로부터 구원 받는 것을 의미한다.

(3) 둘째는 어떤 것(사탄의 공격, 유혹, 미혹, 재난, 시험, 죄의 유혹, 위험)
으로부터 건져냄을 받는 것, 보호함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4) 본문에서 구원을 온전히 이루라는 것은
문맥상 12절에서의 복종하는 것과 연관된 것이지
행위로 구원을 유지하는 것과는 관련이 없다. !!!!!!!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을 받기 위해
일하거나 구원을 유지하기 위해 일하지 않고,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일하는 것이다.

 이 의미는 구원 받은 증거를 표출해 보이라는 의미다.!!!

 당연히 구원 받지 못했다면 그것을 표출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마음에 가득한 것이 행동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온전한 믿음과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라면
그것이 행위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아무리 감춘다해도 결정적인 순간에 드러나게 되어 있다.

(5) 영어 성경에서는 “이루라”라는 표현이 “work out”으로 표기되어 있다.

즉, 구원을 받아 내적으로 일어난 변화를 외적으로, 밖으로 드러내라는 것이다. !!!

구원 받은 사람이라면 그 믿음을 행위로 드러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네게는 믿음이 있으나 내게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보이라.
그러면 내가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약 2:18).

(6) 그리스도인에게는 믿음의 행위가 있어야 한다.
 “믿음”이 있다면 그 “믿음”을 열매로서 그리스도인은 드러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13절에 나와 있듯이 성도들로 하여금
성도들 안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선한 기쁘심에 따라
뜻을 두고 행하기 위해서다.

3) 너희 안에서 역사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니(13절).

(1) 극단적 칼빈주의자들은 13절을 마치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분의 기뻐하시는 뜻을 행하시기 위해 역사하신다.”라고 왜곡되게 주장한다.

(2) 그러나 본문에서 말하는 뜻을 두고 행하는 사람의 주체는
 하나님이 아니라 성도들이라는 사실에 주의해야 한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선한 기쁘심에 따라 뜻을 두고 행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이다.

(3) 그러나 이 일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12절에서 언급했듯이
두려움과 떨림으로 복종하고 구원을 온전히 이루는
 성도들의 모습이 선행되어야 한다.
즉, 복종하지 않거나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원을 온전히 이루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아무리 강력하게 역사 하신다 해도 소용이 없는 것이다.

(4) 벌콥 같은 경우는 이 구절을 구원 받지 못한 죄인에게 적용시킴으로써
 하나님께서 선택받은 죄인으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만든다는
칼빈주의식의 주장을 펴기도 하지만,
12,13절은 죄인이 구원 받은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12,13절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의 복음에 합당한 행실을 나타내는 것과
 연관된 것이다(히 13:21, 딛 2:11-15, 사 26:12, 고전 15:10).

4) 모든 일을 불평이나 다툼이 없도록 하라(14절).

(1) 어떤 일이든 불평이나 다툼이 있다면 하지 않는 것이 낫다.
불평이나 다툼은 육신적인 동기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특히 잠언 13:10에서는 다툼이 교만으로“만” 온다고 언급하고 있다.

(2) 모든 일에 있어서 불평이나 다툼이 없도록 해야 하는 것은 15절에서 제시된다.

교회 안에 일어나는 내부적인 다툼이나 분쟁으로 인해
세상 사람들로부터 책망을 받는 것만큼 수치스런 일은 없다(벧전 2:12).
이처럼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책망을 받아서는 안 되고,
오히려 흠 없고 순전한 자들로 서서,
세상에 빛을 비추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5) 비뚤어지고 변질된 민족(15절).

(1) 이것은 이스라엘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주석가들은 성경에서 일반적으로 “민족”,
곧 단수는 이스라엘을 “민족들”,
곧 복수는 이방 민족들을 언급하는 것을 보고
본문에 나오는 “비뚤어지고 변질된 민족”을 이스라엘이라고 주장한다.
또 신명기 32:5을 들어서 이스라엘에 대한 언급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2) 그러나 빌립보에는 그런 대상이 될 만한 유대인의 회당도 없고,
 유대주의자들에 대한 경고도 극히 적기 때문에(빌 1:15; 3:2,3,4,5,6)
그들의 주장은 옳지 않다.

(3) 또한 신명기 32:5을 잘 보면 “비뚤어진 민족”이 아니라 “비뚤어진 세대”다.
민족과 세대는 분명하게 다르다.
신명기에서 교리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세대는
 대환란에서의 "마지막 때”의 세대를 언급하는 것인 반면,
빌립보서의 “민족”은 교회시대에서의 “민족”을 언급하고 있다.

(4) 교회시대의 여러 민족들 가운데 한 민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민족은 당시의 로마나 그리스를 의미한다.
이것은 15절 끝에 “세상”과 잘 연결된다.
“세상”을 이스라엘로 부르는 경우는 찾아 볼 수 없다.
즉, 민족은 직접적으로는 로마나 그리스,
더 나아가서는 “세상”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6) 세상에서 빛들을 비추는 자들(15,16절).

(1) 세상에서 빛들을 비추기 위한 방법은 “생명의 말씀”을 제시하는 것이다(16절).

결코 세상의 불쌍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라든지,
 먹을 것을 주고 봉사하는 등의 행위들은
빛들을 비추기에는 역부족이다.

오직 영원히 살아있는 생명의 말씀을 제시해야만
세상에서 빛들을 비출 수가 있는 것이다.

(2) 또 봉사활동은 많이 하면서도 생명의 말씀을 제시하지 않은 사람들은
 헛되이 달린 사람들이고 헛되이 수고한 사람들이다.

거리에서 설교하고 구령하며 진리를 전파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만이
 온전히 경주를 하고 온전히 수고를 한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7) 그리스도의 날(16절).

(1) 여기에 또 다시 그리스도의 날이 나옵니다.
그리스도의 날이 휴거에서 시작하여 그리스도의 심판석,
 어린양의 혼인식까지를 가리키는 날이다.

(2) 사도 바울은 생명의 말씀을 제시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날에 자신의 온전한 경주와 수고에 대해
 자랑하려 함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물론 자랑한다고 해서 바울 자신이 이 모든 일을 이루었다고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이루어 주셨다고 말하면서
그리스도를 자랑하게 될 것이다.

 데살로니가전서 2:19을 보라.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오실 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 있을 너희가 아니겠느냐?』

(3) 우리가 생명의 말씀을 제시했을 때,
그 말씀을 받아들인 회심자들이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함께 설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자랑의 면류관이다.
고린도후서 1:14을 보라.

『너희가 또한 부분적으로 우리를 아는 것같이,
 주 예수의 날에 너희도 우리의 기쁨이 되듯이,
우리가 너희의 기쁨이 되려 함이라.』

이 두 구절에서 보듯이,
생명의 말씀을 제시한 사람들이나
생명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믿어
 그 말씀으로 훈련받고 신실한 모습을 받은 사람들이나
그리스도의 날에는 서로가 서로의 기쁨이 될 것이다.
그러나 생명의 말씀을 제시하는 것을 거부하는 회심자들이 있다면
그것은 그 사역을 헛되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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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은
“예수의 이름에”(at the name of Jesus) 꿇게 한다고 말씀한다.
그런데 어떤 변개된 성경은
 “예수의 이름 안에서”(in the name of Jesus)라고 변개시켜 놓았다.

그러나 예수의 이름 안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요 14:14)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마귀나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이
 “예수의 이름 안에서” 무릎 꿇을 일은 없을 것이다.
 그들은 “예수의 이름에” 무릎 꿇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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