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2-14 09:22
히브리서 8장 ; “covenant”언약과 “testament”언약
 글쓴이 : kEsther
조회 : 4,288  
히브리서 8장 ; “covenant”언약과 “testament”언약

* 히브리서 8장을 통해 새 언약에 대한 교리를 살펴보자.!!

『그러나 이제 그는 더 좋은 약속들 위에 제정된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이신 만큼
 더욱 훌륭한 직분을 얻으셨느니라』
( [한글킹제임스성경]; 히브리서 8장 6절)

 땅에서 사역하는 제사장들은
하늘에 있는 것에 대한 모형으로 사역하고 있을 뿐이다.
 이 사실을 본문은 출애굽기 25:40을 인용하며 설명한다(5절).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 사역하시는 곳은
땅에 있는 성막의 원형이 되는 곳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더 우월한” 대제사장이심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 사실을 6절에서는 “더 좋은 약속들”과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와
 “더욱 훌륭한 직분”이라는 세 가지 말로 설명한다.

“더 좋은 약속들”은
요한복음 5:24와 8:51, 로마서 10:9,10, 고린도전서 15:40-58 등과 같은 것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얻고 부활과 영생을 보장받는다는 약속이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고,
정죄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요 5:24).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내 말을 지키면 그는 결코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요 8:51).

예수님께서는 이 약속들을 이루시기 위해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가 되셔야 했다.
예수님 외에 다른 중보자는 필요하지 않다.
그분만이 유일한 중보자이시며(딤전 2:5),
그분의 중보자로서의 직분은
 어떤 다른 제사장들의 직분보다
 “더욱 훌륭한” 직분이기 때문이다.

그분의 직분이 얼마나 훌륭한 지 단 한 번 희생제물을 드림으로 말미암아
 더 이상 아무것도 제시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들이 가장 작은 자로부터 가장 큰 자에 이르기까지 다 나를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이심을 말하기 위해서
 본문은 “새 언약”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7절에서 “첫 번째 언약”과 대조되는 것으로서,
구약의 율법에 대조되는 신약의 복음을 말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지금 대제사장으로서
그분의 몸된 교회에 속한 성도들을 위해 사역하시는데,
이것은 구약의 레위 제사장들이 여러 번 드림으로써도 할 수 없었던 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 번 드리심으로
영원히 이루셨다는 내용으로 보아 인정할 만하다.

히브리서는 지금까지 계속
 예수 그리스도께서 레위의 제사장들보다
우월한 새로운 대제사장이시라는 것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우리는 앞에서 그분이 교회시대의 성도들만을 위한 제사장이 아니라
먼저 유대인들의 대제사장이 되어야 함을 충분히 보았다.

그렇다면 여기서의 “새 언약”도 이 시대를 향한 “신약”의 의미가 아닌,
 유대인들을 위한 더 특별한 의미로 사용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물론 구약의 율법과 대조되는 것은 신약의 복음이다.

하지만 그 경우에 사용되는 단어는 “testament”로서의 “언약”이다.

이 단어는 우리가 흔히
“구약”(Old Testament), “신약”(New Testament)
이라고 말할 때 쓰이는 단어로서,
그야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새로운 백성과 맺으신 새 언약,
 바로 신약시대를 이끄는 언약인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9장에서 다시 자세하게 다룰 것이다.)

그렇지만 본문에서 사용되는 단어는 “covenant”로서의 언약이다.

이 언약은 교회시대를 다루는 언약과는 차이가 있으며,
오히려 하나님께서 원래부터 왕국을 계획하시고
 그것을 이루려고 진행시키시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그분의 경륜들과 관계된다.

성경에서 “testament”로서의 언약은 두 가지가 있다
(이 말은 “유언”이라는 의미를 포함한 언약으로서,
누군가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은 성경 속에 있는 여러 언약들을 단 두 개,
 즉 구약과 신약으로만 제한시키려고 한다.

 하지만 성경에는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언약들이 있으며,
그것들은 일곱 가지로 정리가 된다.

그리고 이 언약들은 모두 왕국(“천국”)과 관련이 있다.
(“왕국” 또는 “천국”에 대해서는
마태복음 피터 럭크만 주석서의 「천국」부분을 참조하라.)

첫 번째 등장하는 언약은 “에덴의 언약”이라고 부를 수 있다(창 1:28-30; 2:15-17).
이 언약은 인간이 타락하기 이전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에게 주어졌던 언약인데,
이 언약 하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땅을 다시 채우고” “땅을 정복하라”는 명령을 하셨다. 이것은 아담에게 주어진 왕권위임사항이다.
아직 아무런 죄도 없던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한 왕국을 주시고
그것을 통치하도록 하셨다.

이 언약에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지식의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사항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것에 대한 불순종의 대가는 죽음이었다.

두 번째 언약은 “아담의 언약”이라고 불린다(창 3:14-19).
이 언약에서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아담과 이브에게 저주와 더불어 약속을 하시는데,
그것은 바로 이브에게 “그녀의 씨”,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탄을 밟으실 것이라고 약속하신 것이다.
이 언약은 아담이 땅에 대한 통치권을 잃었다는 것을 보여 주며(왕국을 잃었다.)
 “여인의 씨”만이 찬탈자인 사탄을 물리치고 왕국을 회복하는
 진정한 왕이 될 것임을 보여 준다.

세 번째 언약은 “노아의 언약”이다(창 8:20-9:17).
이 언약은 몇 가지 추가사항을 제외하고는 아담과 맺으신
“에덴의 언약”과 비슷한데,
바로 “땅을 다시 채우고” “땅을 정복하라”는 것으로,
 역시 왕국위임의 언약이다.

네 번째 언약은 “아브라함의 언약”이다(창 12:1-3).
이 언약에서 아브라함은 그 씨와 더불어 축복을 받는데,
이것은 유대인들에게 적용되어,
누구라도 아브라함의 씨인
유대인을 저주하면 저주를 받고 축복하면 복을 받는다.
그는 또한 땅에 관한 언약을 받는데(창 15:18-21),
바로 팔레스타인 땅을 그에게 주시겠다는 언약이다.
이 언약에 따라서 이스라엘은 그 땅을 유업으로 받으며,
이것은 천년왕국 때에 메시야 왕국으로 완성된다.

다섯 번째 언약은 “모세의 언약”으로서,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한 이후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준 언약이다.
이것은 한마디로 “율법”이라고 이해할 수 있으며,
십계명을 비롯한 여러 가지 규례와 율례들이 이 언약의 내용으로 제시된다.
 이 언약은 이스라엘 민족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으며,
이방인들이나 신약교회와는 관련이 없다.
이 언약은 “안식일”이 표적이 되는데,
그들은 안식일과 그밖에 하나님께서 주신 규례들을 지키면서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께서 그들의 하나님이심을 확인한다.
 하나님께서는 전체의 인류를 다루시기 보다는
이스라엘이라는 한 민족을 택하셔서
그 민족을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신정통치국가를 세워
 모든 이방 민족의 우두머리가 되도록 하시기 원하셨다.
이 언약에는 “땅”에 대한 언약도 포함된다(신 28-30장),
바로 “팔레스타인 땅”에 대한 유업을 말하는 부분인데,
하나님께서는 이 언약을 통해
 그들이 하나님을 잘 섬기면 그 땅에서 번성케 하시고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돌이켜 이방의 신들로 향하면
 그 땅에서 쫓아버리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이 “땅”은 신정통치 왕국의 직접적인 영토이다.
먼저는 아브라함에게 약속되었던 것이고, 다윗과 솔로몬에게 회복되었다.
그후 그들의 지속적인 반역으로 그들은 이방 가운데 쫓겨나게 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이 땅은 유대인에게 완전히 회복될 것이다.

여섯 번째 언약은 “다윗의 언약”이다(삼하 7:4-17).
이 언약은 메시야 왕께서 다윗의 씨로 오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다윗과 영원한 언약을 세워
그의 왕국과 그의 보좌를 영원히 세우시겠다고 하셨으며,
이 언약에 따라서 메시야 왕은 다윗의 보좌에 앉아서
그의 왕국을 영원히 다스리실 것이다.
이것은 천년왕국 때 직접 성취될 것이며,
그 보좌는 팔레스타인 땅에 세워질 것이다.

마지막 일곱 번째 언약은 히브리서 8장에서 다루게 되는
 “새 언약”이다.

이 언약은 예레미야 31:31-37에 약속되어 있는데,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이 언약을
“이스라엘 집과 유다집”과 더불어 맺으시겠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이 “새 언약”의 대상은 분명히 유대인이 된다.
교회가 영적인 유대인이니 어쩌니 하는 말들로
변명을 수차례 늘어놓은 학자들이 있으나
이스라엘 민족을 다루는 “집”이라는 단어가 분명히 제시되어 있는 이상
이 언약은 이방인들이나 신약교회와는 무관한 언약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언약은 아직 맺어지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미래에 이 언약을 “맺으실” 것이다.

『보라, 그 날들이 오리라. 주가 말하노라.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리라』(히 8:8).
 “그 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
이 날은 주께서 그분의 백성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실 때이다(렘 31:34).
지금은 그들의 죄가 없어지지 않았다.
그들의 죄는 대환란을 겪은 이후 천년왕국에서 지워질 것이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를 다시는 기억하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과거에 하나님의 법은 하나님의 아들을 죽인 그 민족의 마음에서 제거되었고
그들은 복음도 거절했으나,
그때는 하나님의 법이 그들의 생각과 마음에 있게 될 것이다.
또한 이때는 예수님께서 실제적인 땅의 보좌에 앉아
 눈에 보이도록 다스리시기 때문에 아무도 “주를 알라.”고 가르치지 않을 것이다
(렘 31:34, 히 8:11).
구원의 계획이나 복음이나
그외의 주님에 대해 가르치는 모든 예언들은 멈추게 된다.
 만약 그들이 예언을 하게 되면 저주를 받게된다(슼 13:3).
 증거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금해질 것이다.

『그들이 자기 이웃이나 형제에게 일일이 가르쳐 주를 알라고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가장 작은 자로부터 가장 큰 자에 이르기까지
다 나를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히 8:11).

이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더불어 나타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임하시는 그때에
이스라엘 민족과 이 “새 언약”을 맺으시게 된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8장에서 말하는 이 언약은
“그리스도의 몸”과도 “영적인 유대인”들과도
심지어 교회시대에 구원받은 히브리 그리스도인들과도 관계가 없다.
오직 아브라함의 육신적인 씨인 유대인들,
그것도 환란을 통과한 유대인들과만 맺어지는 언약이다.

유대인들이 민족적으로 회복될 것이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교회시대의 교리를 다루는 로마서에서 조차 이 진리는 분명히 제시된다.

로마서 11장은 미래에 이스라엘이 회복되어 새 언약을 맺게 되는 것을
 하나의 “신비”라고 말한다.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이방인들의 충만함이 차기까지는 이스라엘의 일부가 완고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기록된 바와 같이
“구원자가 시온에서 와서 야곱에게서 경건치 아니한 것을 제거하리라.
 이는 내가 그들의 죄들을 없앨 때 그들에 대한 나의 언약이 이것임이니라.”
 함과 같으니라』(롬 11:25-27).

이 시대에 이스라엘은 반역하여 나갔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성경은 이스라엘의 “일부”가 완고하게 되었다고 말하며
 결국은 온 이스라엘이 회복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일곱 가지 언약은 세대주의의 기초가 된다.

사실 “언약신학”(Covenant Theology)은 단 두 개의 언약,
즉 “옛 언약”(구약)과 “새 언약”(신약)밖에는 제시하지 않는다.

 그것도 “covenant”로서의 언약이 아니라 “testament”로서의 언약이다.

결국 언약신학은 하나님의 언약들에 대해 충분히 제시하지 못하는 것이다.

오히려 세대주의 신학이 하나님의 언약들을 분명하게 제시해 준다.

[물론 엄밀히 말하면
 “covenant”로서의 “새 언약” 자체가
 이중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첫째는 지금 설명했듯이 유대인들과 맺어질 언약이고,

둘째는 예수님의 피로 맺은 새 언약이다.

 많은 학자들은 이 두 번째의 의미에만 집중한다.

그러나 이 두번째의 의미로 사용될 때는
 “new testament”로 분리되어 불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고전 11:25, 고후 3:6).

이에 대해서는 9장과 10장에서 다시 자세히 다루게 되겠지만,
여기 8장에서 말하는 것은 분명히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맺을(7절) “새 언약”이다.]
『그것은 내가 그들의 조상의 손을 잡아
이집트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그들과 세운 언약과 같지 아니하니,
 이는 그들이 내 언약 속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그들을 돌아보지 아니하였음이라. 주가 말하노라』(9절).

“새 언약”을 말함에 있어서 히브리서 저자는
이것을 과거에 맺었던 언약과 비교한다.

이것은 신약의 복음을 구약의 율법에 비교하는 것과 비슷하다.

 바로 이점이 많은 학자들이 이 언약을
 교회시대를 향한 “신약”과 혼동하는 이유이다.

분명히 신약을 구약과 비교하듯이
이 “새 언약”을 “옛 언약”과 비교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여기서의 옛 언약이 율법을 말함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율법이 신약(New Testament)과만 대조되는 것이 아니라
 새 언약(New Covenant)과도 대조된다는 사실이다.

구약과 신약을 말할 때 그것은
이스라엘을 향한 경륜에서 교회를 향한 경륜으로 변하는
 “경륜의 변화”라는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

하지만 새 언약을 말할 때 그것은 같은 유대인을 다루는 경륜 속에서
과거의 것과는 다른 새로운 것을 제시한다는 관점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우리가 4장에서 살펴본 것처럼,
“팔레스타인의 안식”과 비교되는 것은
“영적인 안식”이 아니라
 “천년왕국의 안식”인 것과 같다.)


본문은 이 언약을 그들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날 맺어진 언약과
대조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 언약은 “모세의 언약”인 율법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 언약 속에서 온전히 행하지 않았기에
결국 배도하여 이방 가운데 흩어졌다.

그 언약은 조건적인 언약이고 일시적인 언약이었다.

그러나 앞으로 그들에게 맺어질 언약은
조건적이지도 않고 일시적이지도 않다.

이 언약은 영원한 언약이 될 것이다.

 이 대조가 구약과 신약이 대조되는 것과는
다른 관점으로 대조된다는 것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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