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3-22 06:01
시편 제 2권을 읽고 고난을 이겨내자!
 글쓴이 : kEsther
조회 : 3,433  
시 가 서
* 고난과 승리의 노래들 (시편 제2권)

▶ 시편 제2권의 내용을 통해 예언과 영적 교훈들을 배운다.
▶ 제2권의 시들 중 악장에게 드려진 시들과 고난의 시들을 살펴본다.
  특히 고난의 시들을 통해 대환란에 대한 예언을 공부한다.

시편의 둘째 부분, 즉 제2권은
 제42편부터 제72편까지 총 31편의 시들로 구성되어 있다.

“고난의 시들”이라고 불릴만큼
이 부분에는 고난에 대한 주제가 많이 다루어진다.

다윗이 범죄한 후에 드린 참회의 시(시편 51편)를 통해 보더라도,
이 부분의 시들이 얼마나 슬픈 노래들인가를 알 수 있다.
 여기에는 다윗이 왕이 되기 전 쫓겨 다닐 때 지은 시들도
여럿 있다(52,54,56,59,63편).

벌링거는 이 두 번째 부분을 출애굽기와 연관시키기도 한다.
이스라엘이 민족적으로 고난받은 것은 이집트에 있을 때였으며,
 실제로 출애굽 사건을 상기하며
 그 역사적 사건을 주제로 쓴 시편들도 여럿 있다.(44,66,68편 등).

그들의 광야 생활은 큰 고난의 때였으며,
그런 점에서 “고난”을 주제로 다루는 이 부분과 잘 들어맞는다.

하지만 제1권을 창세기, 제2권을 출애굽기, 재3권을 레위기,
이런 식으로 일대일 대응을 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제3권에서도 출애굽을 주제로한 서사시는 여럿 있기 때문이다(78,80,81 등).
지난 호에서 말한 것과 같이 시편은 그 전체적인 내용이 예언이다.
제1권에서도 초림과 재림에 대한 예언적 언급들을 살펴보았는데,
 마찬가지로 제2권에서도 그러한 예언들이 많이 담겨 있다.

1. 다윗과 그의 경배 - “악장에게”
시편 제2부의 주된 특징 중 하나는 대부분의 시에 표제어가 붙어있다는 것이다.
총 31개의 시편 중에서 표제가 붙어 있지 않은 시는 단 두 편(43,71편) 뿐이다.
그 중에서도 “악장에게” 바치는 노래(혹은 시)가 25편이나 된다.
이것은 41개 편이 있는 제1권에서 19번 나오는 것이라든지,
 3,4,5권 전체를 합쳐서 11번 나오는 것과 비교해 볼 때
상당한 것이다.

 “악장에게”(To the chief Musician)라는 말은
악장에게 시(혹은 노래)를 주어 노래하게 했다는 것인데,
이러한 상황은 이 모든 시들이 다윗 왕의 경배와 연관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알다시피 다윗은 경배에 누구보다 열심을 보였던 왕이다.
그는 기브아에 있던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져와서,
궤를 위한 성막을 따로 만들었다(대상 16:1).
성전을 지으려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으며,
하나님께서는 비록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으나, 그에게 계시를 주시어
솔로몬이 지을 성전의 구도를 보게 하셨다(대상 28:12).
이에 따라 다윗은 성전 기명에 쓰일 재료들을 준비하게 된다.
다윗은 평생 동안 궤 앞에서 즐거움으로 찬양하며 주님께 경배했던 왕이다.
그는 경배를 위한 제사장들, 성전 봉사를 위한 레위인들, 성가대원들, 문지기들, 보물창고 관리인들 등을 임명하여 궤 앞에서 섬기는 일을 체계적으로 이루었다.
 특히 그가 찬양을 위해 준비한 성가대는 288명이었으며,
그들은 12명씩 24개 조로 짜여서 찬양을 드렸다(대상 25:7-31).
이 성가대를 위한 악장들은 아삽과 여두둔(에단)과 헤만이다(대상 25:2-4).
다윗은 자기가 작곡한 노래를 이들에게 주어 노래하게 했는데,
 역대기상 16:7에서는
『아삽과 그의 형제들의 손에 먼저 이 시를 전하였더라.』고 말씀한다.
이것이 바로 시편에서 “악장에게”라고 기록한 의미이다.
제62편에서는 “악장 여두둔에게”라고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그런데 이 시편들에서는 특이한 사항이 발견된다.
바로 “코라의 아들들을 위하여”라는 표제어이다.
이 말은 총 일곱 편(42,44-49편)에서 등장하는데,
제3권에서도 네 번 (84,85,87,88편) 등장한다.
이 코라는 두말할 나위 없이, 광야에서 모세에 반역하다 멸망했던 그 코라이다.
 민수기 16장에서 코라는 아론의 제사장 직분을 시기하여 반역을 일으킨다.
코라는 레위인으로서 아론과 가까운 계보를 갖고 있던 인물이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성전의 직무를 위해
레위의 아들들을 셋으로 나누었는데,
 그들은 코핫 자손, 므라리 자손, 게르손 자손이다.
코핫 자손 중 이스할을 통해 이어지는 자손들은 성막 안의 기구들을 담당하며,
므라리 자손들은 널판, 빗장, 기둥 같은 성막의 뼈대를 담당하며,
게르손 자손들은 막이나 휘장 같은 부분들을 담당했다(민 3장).
아론의 제사장 계열은 특별하게 선임되었는데,
그는 코핫의 아들들 중 암람의 아들이며,
반면 코라는 같은 코핫의 아들들 중 이스할의 아들이다.
그러니까 코라는 아론과 가장 가까운 계열이며,
성막의 직무에 대해 보더라도 게르손 계열과 므라리 계열보다
성막의 더 핵심적인 부분들을 관리하는 계열인 것이다.
그런 그가 반역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가장 높은 지위에 있었던
사탄이 반역한 것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멸망하게 되었는데,
그때 땅이 입을 벌려(지진) 코라와
그에 속한 가족들이 모두 산 채로 구렁으로 던져졌던 것이다(민 16:31-33).
그런데 시편에서는 바로 그 “코라의 아들들”을 위해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시들은 그때 죽은 코라의 아들들을 애도하기 위한 노래가 아니다.
 코라의 아들들은 다윗 때에 살아 있었다.
코라가 그 가족들과 함께 멸망할 때, 그 아들들 중 누군가,
즉 “죄의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어린 아이”(신 1:39)는 살아 남았을 것이다.
 민수기 16:24에서
“너희는 코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성막 주위로부터 떠나라.” 하셨을 때,
어떤 아들들은 그 장막에서 도망쳤을 것이다.
바로 그들의 후손이 다윗 때에 있었던 “코라의 아들들”이다.
그들은 다윗 때에 성막 봉사를 하고 있었으며,
다윗은 바로 이들이 부를 노래들을 만들었던 것이다.
역대기상 26장을 보면,
이들은 특별히 성막에서 “문지기”들로 섬겼는데,
그렇다고 찬양과 관련이 없다고는 볼 수 없다.
바로 그 코라의 자손 중에서 악장 헤만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한편 아삽은 게르손 자손이고, 에단(여두둔)은 므라리 자손이다(대상6:33-48).
민수기에서 성막을 담당했던 레위인 세 계열은
다윗 때에도 그대로 봉사했으며, 그들 중에서 찬양하는 자들이 나왔다.

“코라의 아들들”을 11개의 시편의 표제어로 썼다는 것은
 하나님의 용서와 자비의 법칙을 잘 보여주는 것이며,
이는 또한 시편 전체의 주제이기도 하다.

다윗은 이 모든 것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비와 은총과 위대하심을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

2. 고난의 노래들
시편의 제2권은 고난의 노래로 시작한다.
『수사슴이 시냇물을 갈망하는 것같이 오 하나님이여,
내 혼도 그처럼 주를 갈망하나이다』(시 42:1).
이 갈망은 원수들이 “너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라는 비난 때문이다(3절).
 이것은 단순히 불신자들이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는 조롱이 아니다.
 이것은 실제적인 원수의 압제이다.
『어찌하여주께서 나를 버리시나이까?
어찌하여 내가 원수의 압제로 인하여 슬퍼하며 다녀야 하나이까』(43:2).
하지만 다윗은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며 오히려 더욱
더 주님을 찬양하겠다고 결의한다(42:5,8; 43:4).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내 얼굴을 강건케 하시는 분이요,
 나의 하나님이신 그분을 내가 여전히 찬양하리라』(42:11; 43:5).
이것이 바로 시편에 나오는 고난의 노래들의 전형적인 형태다.
즉 악인들로 인해 당하는 고난에 대해 호소하고,
때로는 그 악인들을 저주하기도 하며,
자기의 죄로 인한 고난일 때에는 깊이 회개한다.
그러는 가운데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고 있으며, 그 도우심을 믿고 찬양을 드린다.
하지만 시편에 나오는 고난의 노래들은
단순히 개인적인 고통을 아뢰고 위로받는 차원의 것이 아니다.
 여기서 고난받는 대상은 일차적으로는 다윗 자신이지만,
 예언적으로는 유대인의 총체적인 고난을 말하고 있다.
물론 간혹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해서도 예표적으로 예언한다.
(55:13,14; 69:4,9 등).

유대인의 고난을 말한다면 재판관 시대에 당한 이방인의 압제부터 시작해서
바빌론 포로까지, 더 나아가 대환란까지를 말하고 있다.

(1) 야곱의 고난의 때 : 대환란
44편은 과거 출애굽 때를 상기하며 드리는 기도다.
 1절부터 시작되는 내용은 여호수아와 함께 카나안 땅을 정복한 내용이다.
시편 저자는 그 일을 이루신 분은 하나님이시라고 분명하게 고백한다(3절).
하지만 곧이어 7절부터는 원수들에게 미움을 받는 그들의 모습을 말한다.

『그러나 주께서 우리를 버리셨고...
우리의 군대들과 함께 진군하지 아니하시나이다』(9절).

『주께서 우리를 잡아먹힐 양처럼 내어주셨고
이방 가운데 우리를 흩으셨나이다』(11절).

이어지는 구절들이 모두 유대인들이 이방인에게 고통받는 내용들이다.
이 내용들을 재판관기 때 이방인의 압제라고 볼 지도 모르지만,
표제어가 “코라의 아들들을 위하여”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보라.
이 시는 다윗 왕 때에 지어진 것인데, 이 고난을 계속되는 고난으로 묘사하고 있다.

 다윗 왕이 언제 이방인들 가운데서 이런 고난을 당했던가?
 따라서 이것은 예언적인 묘사이다.

특히 11절에서 “우리를 흩으셨나이다.”는 말씀은
 곧바로 신명기 28장과 연관된다.

 즉 바빌론 포로이다.
다윗 시대에 바빌론 포로에 대해 언급했다는 것은 대단한 예언이다.
그 예언 그대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 예언은 대환란에 대한 예언이기도 하다.

19절은
『그러나 주께서는 용들의 처소에서 우리에게 심한 상처를 내시고...』
라고 말씀한다.
칼데아인들을 “용들”이라고 비유적으로 묘사했다고도 볼 수 있지만,
그 보다는 마귀들을 통해
직접 유대인들을 괴롭히는 대환란 때라고 보는 것이 더 문자적인 해석일 것이다.
대환란 때 적그리스도는 그 자신이 마귀이며,
또 끝없이 깊은 구렁에서 초자연적인 마귀적 짐승들도 올라온다.

그때 유대인들은
『오 주여, 깨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일어나소서. 우리를 영원히 버리지 마소서.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가리시며... 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23-26절)
라고 기도할 것이다.
이와 유사한 형태의 기도가 시편에서 종종 발견된다.
(3:7; 4:6;35:23; 67:1; 69:17; 80:3 등).

하나님께서는 주무시지도 않는다 하셨는데(121:4),
 왜 여기서는 주무신다 하는가?
그것은 그들을 버려두고 그들을 향해 얼굴을 돌리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 유대인들은 그런 상태다.

대환란 때에 그 버림받은 상태는 극에 달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회개로 기도할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들으시고 그분의 얼굴을 그들에게 돌리실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일어나 싸우실 것이다.

비슷한 모습이 53:4에도 나온다.

『죄악을 행하는 자들은 지식이 없는가?
그들이 빵을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하나님을 부르지 아니하였도다.』
유대인들은 살육당했고, 이방인들 가운데 삼킨바 되었다.
그런 모습은 역사상 많이 발견되며, 대환란 때 가장 극심할 것이다.


시 가 서
*  승리의 노래들 - 시편 제2권(2)
▶ 시편 제2권의 내용을 통해 예언과 영적 교훈들을 배운다
▶ 제2권의 시들 중 다윗의 고난에 대한 시들과,
  재림의 승리를 노래하는 시들을 공부한다.

(2) 다윗의 고난
이 부분에 제시된 고난의 시들 중에는
 다윗이 왕 되기 전에 당했던 고난을 직접 묘사 하는 것들도 있다.

표제에서 밝히고 있는 바, 52편은
 에돔인 도엑이 다윗의 숨은 곳을 사울에게 밀고했을 때의 상황이며(삼상 22장),
 54편은 십인들이 다위을 밀고했을 때(삼상 26장),
56편은 필리스티아 가드에서 위협을 당했을 때(삼상 21장),
57편은 아둘람 굴에 있었을 때(삼상 22장),
 59편은 사울이 군사들을 보내 다윗을 죽이려 기다렸을 때(삼상 19:11),
그리고 63편은 유다 광야에서 쫓겨다닐 때(삼상 22-26장)의 상황들이다.

이 시들에서는 다윗이 실제적으로 당하고 있는 고난들을 묘사한다. !!!!

사무엘상의 해당 부분과 함께 읽으면
그 기도가 얼마나 간절한지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우리에게 큰 교훈이 되는 것은,
다윗은 그 간절한 기도 가운데서도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주님을 더욱더 찬양한다(52:9; 54:6; 56:12; 57:7-11; 59:16).
특히 57:7-11을 보라.
아둘람 굴과 유다 광야를 전전하고 있을 때
하나님을 이처럼 위대하게 찬양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가?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없었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52편은 좀 특별하다.
사무엘상 21장에서 다윗은 놉 땅에 가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도움을 받았는데,
그때 에돔인 도엑이 그 장면을 목격한다(삼상 21:7).
그리고 22장에서 사울이 베냐민 사람들에게
 왜 다윗을 자기에게 밀고하지 않느냐고 추궁하자,
도엑이 다윗을 밀고한다.
이 일로 아히멜렉과 그 성읍이 살해당하게 된다.
여기서 도엑이 “에돔” 사람임을 주목하자.
에돔은 원래 이스라엘의 형제(에서)였으나
이스라엘을 돕기는커녕 오히려 이스라엘을 괴롭힌 민족이다.

오바댜 선지자는
에돔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폭력과 교만으로 말미암아
큰 심판을 받으리라고 예언한다.
그들은 바빌론이 유다를 사로잡아 갈 때,
도망자들을 숨겨주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을 바빌론에게 밀고한 자들이다(옵 1:10-14).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께서 바빌론을 멸하실 때 함께 멸망할 것이다(시 137:7,8).
그리고 그 일은 대환란 끝나 아마겟돈 전쟁으로 임하시는 그 날 이루어질 것이다.

도엑은 바로 그 “밀고자”로서의 에돔 민족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다윗을 보호해 준 아히멜렉과 그 제사장들을 죽인 것도 바로 도엑이다.
이 이방인이 하나님의 제사장들을 죽인 것이다.
이에 대한 심판은 철저하다.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도 너를 영원히 멸하시며 너를 없애 버리시리니,
 네 처소에서 너를 뽑아 내시며
산 자들의 땅으로부터 뿌리째 뽑으시리라. 셀라』(시 52:5).
이것은 에돔의 영원한 멸망을 예언한 것이다(사 34:5-8 참조).
바로 재림 때에 있을 일이다.

3. 승리의 노래들 - 재림에 대한 예언

이 부분이 고난의 노래들이라고 해서 기쁨과 즐거움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고난을 통해 승리하는 모습이 자주 드러난다.
 이 승리는 다윗 자신이 주님을 신뢰함으로 승리하는 것을 말하기도 하지만,
 이 고난이 대환란을 예언하는 것이듯이
이 승리 또한 재림의 승리를 예언한다.

앞에서 보았듯이 44편은 유대인들이 대환란의 고통 중에 기도하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곧바로 45편에서 아마겟돈으로 재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라.
『오 지극히 능하신 분이여,
당신의 칼을 당신의 영광과 당신의 위엄과 더불어 당신의 넓적다리에 차소서.
진리와 온유와 공의로 인하여 당신의 위엄으로 승자와 같이 타고 나가소서.
왕의 오른손이 두려운 일들을 왕께 가르치리이다』(45:3,4).
 8절 이후로는 왕이 혼인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두말할 나위없이 어린 양 혼인식의 모습이다.
역시 재림과 연관된 사건이다.
이어서 46편에서는 아마겟돈 전쟁의 그 치열한 모습(46:6,8,9)과
승리하시는 모습이 그려지고(46:10),
 47편에서는 말 그대로 승리의 찬가가 울려퍼진다.
『오 너희 모든 백성들아, 손뼉을 칠지어다.
승리의 함성으로 하나님께 소리칠지어다』(47:1).

 48편도 승리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분의 아름다운 도성을 노래한다.

 50편도 마찬가지다.

60편은 다윗 왕이 시리아와 에돔을 쳤을 때의 상황이다(삼하 8:13,14).
이는 다윗의 정복전쟁에 해당하는 내용인데,
그의 전쟁들은 아마겟돈 전쟁을 예표한다.
예수님께서도 다윗처럼 전쟁으로 땅을 차지하시고
의와 화평으로 천 년을 통치하시는 왕이기 때문이다.
다윗은 시편 60:6-9에서 그 승리를 노래한다. 숙콧과 길르앗(6,7절),
즉 요단 동편, 에프라임과 므낫세(7절),
즉 북왕국의 영토, 모압과 에돔과 필리스티아(8절) 등이
 모두 유다에 계신 “입법자”(7절)께 굴복한다.
그래서 이 구절들 역시 재림을 예언하는 것이다.
다윗처럼 예수님께서도 주변 민족들을 멸하시고 복속시키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사야 13-21장에서 이방 민족들을 책망하시는 것이나,
 아모스 1:3-2:3에서 이방 민족들을 치시는 것은
모두 재림 때 이스라엘 주변국들을 치는 모습을 예언하는 것이다.

시편 65:9-13은 천년왕국 때 땅의 회복을 노래하고 있으며,
66,67장은 천년왕국의 왕을 찬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오, 민족들이 즐거워하고 기쁨으로 노래하게 하소서.
이는 주께서 백성들을 의롭게 판단하시며
 땅 위의 민족들을 통치하실 것이기 때문이니이다. 셀라』(67:4).

마지막에 있는 72편은
 “솔로몬을 위한 시”라고 되어 있는데,
이 솔로몬은 마태복음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묘사할 때 사용하는
 “다윗의 아들”이라는 용어로 인식해야 한다.
왜냐하면 솔로몬의 위대한 업적을 노래하는 이 시편은
궁극적으로 천년왕국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예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6절에서는 『그가... 내려오리니』라고 말씀하는데,
7절에서는 그 날에 “화평의 풍성함”이 지속된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는 솔로몬에게 한정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8절에서는『바다의 끝에서 끝까지... 강에서부터 땅의 끝까지』다스리신다고 했는데,
 이를 과거 솔로몬이 이룬 통치 영역(왕상 4:21,24)이라고만 말하기에는 너무 크다.
이것은 재림 때 그분이 다스리실 땅이다.
그분이 통치하실 때 이방인들은 그분 앞에 굴복할 것이며,
원수들은 먼지를 핥아야 할 것이다(72:9).
먼지를 핥는다는 말은 그분의 발에 짓이겨 얼굴을 땅에 댄다는 말이다.
이는 시편 2:9에서 말씀하신 바 “철장”으로 통치하시는 모습을 보여준다.
솔로몬이 시바 여왕의 접견을 받았듯이,
예수님께도 온 이방 왕들이 모여 경배할 것이다(72:10,11).
그분은 이스라엘과 또 온 세상을 공의롭게 통치하실 것이며,
모든 민족에게 영영히 찬양을 받으실 것이다(72:17-19).
보는 바와 같이
 시편의 둘째 부분은 고난의 노래(42편)로 시작해서 승리의 찬가(72편)로 끝난다.

 유대인은 선택받은 민족인데 그들의 죄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한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께 부르짖을 것이고 주님은 들으실 것이다.
그리고 재림하심으로 모든 원수들을 멸하시고 의와 화평으로 다스리실 것이다.

우리가 본 시편들은 바로 이 진리를 예언하고 있다.

하지만 또 한편, 우리가 받아야 할 영적 교훈을 무시하면 안된다.
이 시편들은 우리 각 성도들이 고난의 삶을 살더라도
 주님을 의지하면 승리한다는 영적 교훈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난 가운데 오히려 주님을 찬양하라.
그것은 주님의 도우심을 확실히 믿고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것이다.
 주님이 내 편이라는 것을 확신하는 것이다.
그렇게 행할 때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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